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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이야기

한국의 발레시초

by 그랑발레 2009. 9. 4.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발레공연은 1925년 배구자의 무용 발표회인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기록으로서 의미 이상은 없고

발레의  선구자 격인 1세대 인물은 한동인, 정지수, 조광, 진수방, 주리, 송범 등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발레단을 만들어 활동한 무용가는 한동인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발레를 배웠는데 당시 일본의 발레는 러시아에서 전수된 것이었다.

광복 직후부터 활동한

 한동인의 서울발레단은 〈레 실피드〉나 〈장미의 정〉같은 명작을 공연하기도 했다.

물론 문서상의 기록이라 그 수준이나 규모를 알 수는 없다.

 

 

 

 

1950년 6월 25일에 〈인어공주〉를 공연하려 했지만 전쟁으로 무산됐고

한동인이 월북하면서 발레단의 짧은 역사가 끝나고 말았다.

이후 발레는 수년간 임자 없는 춤이 되어 버렸다.

당시의 무용가들에게는 명확한 전공이 없었기 때문에

한사람이 여러 가지 춤을 추는 식으로 발레를 하면서 명맥이 유지되고 있었다.

 

 

 

 

1950년대까지 한국에서는 몇 개의 발레단이 활동했지만

발레 흉내내기 수준을 넘지 못했다는 게 정설이다.  

현대무용을 주로 했고

뒤에 한국무용으로 나간 송범씨가 발레 무용수로 직접 뛰고 발레 지도까지 하기도 했다.

 

 

 

 

사실상 한동인을 계승한 사람은 임성남이었다.

일본으로 발레 유학을 떠나 발레단 활동까지 경험하고

돌아온 임성남은 비전문적인 발레 앞에서 전공자의 화려한 모습을 과시했다.  

귀국한 그는 목신의 오후 등을 공연하기도 했지만

당시의 사회적 여건은 발레의 중흥과는 무관한 것이었고

1962년 창단된 국립무용단이 발레단과 무용단으로 분리된 것은

11년이나 지난 1973년에야 가능해졌다.

 

 

 

그때까지 발레는 우리나라에서는 독립적인 춤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1976년에야 드디어 역사적인〈백조의 호수〉 전막이 국내에서 초연되었다.

 

 

 

발레를 제대로 공부한 최초의 사람으로는 임성남씨를 꼽는다.

일본에서 발레를 배워온 임성남은 1956년 귀국공연에서

고전발레를 선보인 뒤 활동영역을 꾸준히 확대했으며

1973년부터 1992년까지 국립발레단을 이끌었고

백조의 호수 국내 초연에서 왕자 역을 맡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시기 각 대학에 무용과가 생겨 발레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1976년에는 광주시립무용단이,

84년에는 최초의  민간 발레단인 유니버설 발레단이 창설돼 발레의 저변을 넓혔다.

 

 

 

1980년대 들어 본격화된

외국 안무가 초청과 발레단원의 해외 연수도 발레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현재 4개 직업 발레단의 단장은 모두 1980년대 이후 한국 발레계의 대표주자였던

30대 중반~40대 초반의 여성들이다.

젊은 여성 단장들과 1990년대 들어

등장한 남성 무용수들이 지금 우리 발레를 떠받치는 주요 기둥이다.

 

 

 

공연의 질적인 향상을 이야기하자면 1984년에 창단된 유니버설 발레단을 빼놓을 수 없다.

전세계 대부분의 발레단이 발레 학교를 설립해 거기서 양성된 무용수들을 기반으로

발레단을 유지하는 데 비해

우리 나라 는 발레학교 대신 대학에서

그 역할을 맡았고 발레단 쪽에서 보자면 득보다 실이 많은 일이었다.

 

 

 

유니버설 발레단은 해외의 뛰어난 무용수들을 수입하는

동시에 러시아 발레 스쿨 시스템을 받아들여 이 문제를 자체 해결하면서

무용수들을 배출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청한 외국인 예술 감독들을 중심으로

막대한 투자를 해 다양한 발레를 선보여

한국의 발레 무대가 갑자기 화려해지고 원숙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발레리나는 문훈숙과 최태지를 들 수 있다.  

유럽에서 발레 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활동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문훈숙과

일본에서 교육 받은 최태지라는 두 발레리나는 한국 발레의 양대 산맥인

유니버설 발레단과 국립 발레단에서 활동하면서

1980년 후반 한국 발레의 수준을 한단계 높여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스타 중심의 발레가 현재의 발레 열풍을 부추겼다.  

조기 유학으로 해외에 진출한 발레리나들이 현지에서 스타로 성장하거나

(대표적인 예로 강수진)    국내에 들어와 스타 대열에 올라 발레 붐을 조성하고 있다.  

이런 예는 현재 국립 발레단의 프리마돈나인 김지영, 김주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발레리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떨어졌던

남성 무용수들의 성장과 이렇게 배출된 무용수들이

해외 유수의 콩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한국 발레의 위상을 높이는데도 기여하고 있다